이 작가의 이름이 낯익었던건 빨간 기와라는 책을 초보님의 리뷰로 만난 기억이 있어서일게다. 저자는 중국을 대표하는 아동문학 작가로 불린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서문에서 한국에서 중국 책을 많이 낸 작가 중에 들 것인데 그 중 단편들 중에서 가장 아끼는 4편을 선정했다고 밝힌다. 야풍차, 열한 번째 붉은 천, 안녕, 싱싱, 흰 사슴을 찾아서 다. 청소년 소설인데도 잔잔한 감동이 있으며 일본책보다는 중국책인데도 정서적으로 매우 울나라와 흡사하다. 간만에 마음이 순해지는 책을 만났다.
<야풍차>
"왜 야풍차라고 불러요?"
얼바엔즈의 물음에 아버지가 대답했다.
"이 들판에는 바람을 막아 줄 장애물이 없어서 거센 바람이 불어오면 풍차가 야생마처럼 미친 듯이 돌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 풍차를 야풍차라고 부른단다."--13페이지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야풍차의 소용이 있는건 그만큼 더 낙후된 곳이어서다. 풍차는 아버지와 아들의 세상을 향한 절망이자 동시에 희망의 몸부림이다. 울부짖음이자 부르짖음이다. 허허벌판에 우뚝 선 풍차의 위용앞에서 꿈과 환상을 가지는데 그건 아버지의 것에서 아들로 이어진다. 풍차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 자신 하나라는 자부심으로 움직이던 중 허리를 다치고...아들이 우여곡절끝에 아버지의 희망이자 꿈인 풍차를 돌리면서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도 공감하고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보며 뿌듯해한다.
<열한 번째 붉은 천>
외딴 곳의 낡은 오두막에 곰보 할아버지에겐 외뿔 소 밖에 없다. 사람들과도 원래 어울림이 없던 터지만 외뿔 소가 소용이 되던 시절엔 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효용성 때문에 곰보 할아버지를 잊는일 따위는 없었다. 그저 할아버지가 외뿔 소를 사와서 어느날 쇠톱으로 뿔을 잘랐다는 고집불통에 막무가내인 사람으로만 기억할뿐. 그러다 특별히 필요할때만 기억을 하는데 것도 곰보할아버지가 아닌 외뿔 소를 기억해 내는 것이었다.
이 고장 일대는 물 천지로 집집마다 물가에 자리를 잡아서 문만 열어도 물이 넘실거렸다. 그렇기에 물에 익숙하기도 했지만 간혹 어린 아이들을 잘 돌봐도 꼭 빠지는 아이가 생겨났다. 특히 물난리가 나는 계절에는 더러 죽기도 했지만 물에 빠진 아이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할아버지를 찾았다. 아니 외뿔 소를 찾아왔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외뿔 소는 사람 목숨을 구하는 소라는 인식이 되었다.
물에 빠진 아이가 생기면 "빨리! 곰보 할아버지네 외뿔 소를 끌고 와!"가 주문이 되었다. 이 고장의 구명 방법이 소 한 마리를 끌고 와서 아이를 쇠등에 가로로 걸쳐 놓은 뒤 소를 몰아 탈곡장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니게 하는 것이다. 소가 펄쩍 뛰면 등 위의 아이도 제풀에 들썩거리면서 인공호흡 비슷한 효과를 냈다. 소가 탈곡장을 몇 바퀴 도는 사이, 아이는 쿨럭 하고 배 속의 물을 토해 내면서 "엄마......엄마 ...... ."울음을 터트렸다.---42 페이지
어느덧 마을엔 의사가 생겼고 할아버지도 나이 먹고 외뿔 소도 늙어가니 그 둘은 더더구나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오두막서 칩거하는 나날이었다. 오랫만에 마을 의사가 볼일로 나간 사이 랑즈가 물에 빠졌다. 사람들은 까맣게 잊은 외뿔 소를 찾아 오두막으로 왔다. 노쇠하여 죽은거나 진배없던 할아버지가 외뿔 소를 데리고 와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탈곡장을 돌고, 또 돌았다. 결국 아이의 울음이 터지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붉은 천을 외뿔에 묶어 달라. 소가 아이를 살리면 붉은 천을 찢어서 소뿔에 묶어주는 풍습이었다.
소가 할아버지를 향해 움머~하고 응석을 부렸으나 할아버지는 이미 죽은채였고 그 품속에서 붉은천 10개가 나왔다. 그때 외뿔 소의 큰 눈에 맑은 눈물이 맺혔다. 사람들은 강건너 할아버지를 고이 묻어줬다. 다음날 소가 강건너를 바라보며 죽어 있었다. 강을 건너려다 힘이 빠져 주인이자 친구이자 가족인 할아버지를 그리며 죽어간 것이다. 열한 번째 붉은 천을 매단 외뿔을 하늘로 쳐들고.
할아버지가 소를 처음 사왔을때 아이가 물에 빠졌다는 전갈을 받고 소를 억지로 끌고는 왔다. 그러나 돌지를 않아서 결국 그 아이가 죽었고 할아버지는 그때 쇠뿔을 자르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그 후 외뿔 소는 열 명의 목숨을 구하는데 순순히 말을 들었다.
영화 워낭소리의 고집불통이자 워커홀릭인 그 할아버지와 소가 묘하게 오버랩되었다. 얼마전 다녀온 시골집의 소가 생각났고 식객에서의 소가 마지막 요리의 재료가 되기 위해 끌려가면서 마지막으로 쳐다보며 눈물짓던 그 장면이 생생해 눈물이 흘렀다.
<안녕, 싱싱>
여지청(여자 지식 청년을 줄여 부르는 말 :옮긴이)들은 열일고여덟 살 정도 되는 처녀들로 시골 처녀들과는 비교가 안된다. 목선에서 내린 여지청들은 각 집으로 배정되어 농사일뿐 아니라 가사 및 아이들 교육도 도와준다. 다 배정되었는데 싱싱네 집만 오지 않아 싱싱은 뿔따구니가 상당히 났다. 자기네 여지청 자랑에 여념이 없는 친구들을 보며 더욱 화가 난다. 뒤늦게 한 명이 더 오자 싱싱네도 여지청이 생겼는데 다른집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미모에다 맘씨 착하고...그야말로 동네의 자랑거리가 되어 만지면 부서질세라 온 동네가 아끼는 여지청이 되었다.
싱싱(별이라는 뜻 : 옮긴이)은 고집불통에 사나운 성격과 야성을 가진 자유분방한 소년이지만 기실 꼴통으로 통했다. 모두가 소년의 마음을 이해하거나 헤아리는 관심이 부족한 때문이었는데 여지청 누나가 오면서 진심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주니 아주 온순한 소년으로 변모하는 중이었다. 어느날 흙으로 빚은 싱싱의 작품을 보고는 누나만이 감지하는 싱싱의 재능을 보고는 그리기 공부까지 시키게 된다.
중략
어느곳에 가든 어느상황에 처하든 제 할 탓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여지청 누나가 동네 사람들에게 귀히 대접받는 걸 보면 타고난 마음씀씀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사람은 배우고 못배우고를 떠나 타고난 품성이 있고 그 품성이 격이 있음을 나이 먹어가며 은연중 알아간다. 품격은 타고나는 것이고 연마를 통해 더 그윽한 향기로 우러날 수 있음을 안다. 그런 사람은 주위 사람들까지도 변화시키지만 그 향기는 은은하기에 쉽게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일단 변화의 급물살을 타면 그 파급적 효과가 아주 큼을 알아야겠다.
빨간 기와 , 바다소 등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중국 작가 차오원쉬엔의 청소년을 위한 작품집이다. 작가가 중국에서 발표한 중단편 소설 가운데 가장 아끼는 네 편을 직접 골라 묶어낸 책으로, 차오원쉬엔 문학의 다양한 매력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책에 실려 잇는 네 편의 작품은 중국 내에서 각 소설집의 표제작으로 실린 대표작이어서 차오원쉬엔 문학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가늠하는 지표로서도 활요할 수 있을 것이다.
흙으로 세상을 빚는 소년 싱싱의 가슴떨리는 첫사랑을 수채화처럼 그려낸 이야기「안녕, 싱싱」, 가난한 아버지를 위해 대신 곡물을 훔치는 얼바옌즈의 이야기「야풍차」, 눈사태로 인해 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다예「흰 사슴을 찾아서」, 죽는 순간까지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곰보 노인「열한 번째 붉은 천」등 거칠지만 여리고, 어둡지만 눈부신 인간들의 이야기가 가슴 시리게 펼쳐진다.
야풍차
열한 번째 붉은 천
안녕, 싱싱
흰 사슴을 찾아서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