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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만들기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 소위 ‘토박이’라는 단어로 불리고도 남을 정도로 한 곳에 오래 거주했지만 아는 바가 그리 많진 못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마찬가지. 노동시간이 유난히도 긴 우리나라에서 거주지는 그저 잠자는 공간에 불과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을이 뜨기 시작했다. 지자체의 장이 바뀌면서부터였던 것도 같다. 아무리 오랜 기간을 거주해도 애착을 갖기 힘들었던 공간에 대해 내 것으로 느낄 것을 사회가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마을만들기는 현재 곳곳에서 강도 높게 시행되고 있다. 일본에서 도입된 개념이란 소리도 있다. 하지만 현대화 그리고 도시화가 아니었더라면 우린 전통적인 공동체의 품에 안겨 여전히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진보의 과정을 거듭하면서 지역에 기반한 공동체는 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오늘날처럼 인위적으로 해체된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12인의 전문가가 뭉쳐 국내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마을만들기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마을만들기’라는 하나의 용어를 사용해 모든 움직임을 포괄하고 있지만, 각 지역마다 경험하고 있는 마을만들기는 상당히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우선 주체가 누구냐의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경우가 관이 주도적으로 마을만들기를 수행하고 주민은 마치 이미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듯 참여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보다 바람직한 경우는 주민이 주도하는 쪽이었는데, 이 경우에도 관을 완벽히 배제한 채 주민끼리만 행하는 경우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즉, 어느 쪽이 되었건 민과 관의 협력체계 구축은 마을만들기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한 필수조건이라 하겠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간략하게 도식화 한 거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데 사실이다. 마을만들기에 참여하는 주체는 크게 바라보았을 때 민과 관으로 나눌 수 있지만, 사실 민인지 관인지 분류하기가 헷갈리는 주체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사회복지관을 떠올려보자.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다는 측면을 강조한다면 관에 가깝다 하겠지만, 그렇다 하여 이를 정부기관으로 분류하기도 애매하다. 도서관이나 어린이집은 또 어떠한가? 이들 역시 마을만들기에 지대한 힘을 발휘할 순 있으나 그 정체성은 모호한 게 사실이다. 주체만 해도 이리 복잡한데 영역을 파고들면 더더욱 혼란스러울 수가 있다. 마을의 미관을 개선할 수도 있을 것이며, 지자체 예산을 수립하는 데에 역량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미산 등에서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공동육아나 대안교육 등도 물론 마을만들기의 영역이다. 개별 사례들에 일일이 집착한다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어떠한 형태의 마을만들기를 택하더라도 공통적으로 중요한 건 존재한다. 바로 주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마을만들기를 통해 거둘 수 있는 성과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또 그래서도 아니 될 것이다. 헌데 현재까지의 마을만들기는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주민의 수가 너무 적었다. 참여하는 사람만 참여하는 상황에서 가시적인 무언가를 도출하려 안간힘을 쓰다 보니 결국에는 관이 홀로 모든 것을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성과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내야 이와 같은 상황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다시 말해, 성과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과정임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마을만들기의 기본취지라면 주민들이 그 마을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과물을 빨리 생성해야만 한다는 조급증이 발동되는 상황에서는 주인이어야만 하는 주민을 외면하는 일이 발생케 된다. 하지만 조금 속도를 늦추고, 그럼으로써 제 생활권에 대해 주민 스스로가 고민의 고삐를 쥘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것 역시 성공적인 마을만들기라 할 수 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제 목소리를 내는 만큼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의 문제를 놓고 누구는 찬성하는데 다른 누구는 반대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자연스레 갈등이 증폭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면과 소통을 통해 주민 스스로가 갈등을 풀어내는 방법에 눈을 떴을 때 마을만들기는 뜬 구름 잡기 이상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했나보다. 한 사람의 빠른 걸음보다 여럿의 느린 걸음이 소중하다고. 이미 우린 성공적인 마을만들기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안타깝게도 관이 주도한 철거와 재건축 중심의 도시계획은 시흥시 복음자리마을, 은평구 한양주택 등 역동적이던 지역 사회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물리적인 공간은 파괴했을지 몰라도 정신까지 파괴하진 못했을 것으로 믿는다. 스스로 무너뜨린 탑을 다시 쌓는 행위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겠으나, 그럼에도 ‘마을’은 되살릴 만한 가치가 있음이 분명하다. 당신은 지금 어디 살고 있는가. 당신의 삶이 속한 그 공간이 지금 살아 있음을 느끼는가? 마을만들기는 죽은 공간을 살리고 굳은 당신의 표정에도 미소를 가져다 줄 것이다.
도시연대 대표인 김기호 교수를 비롯, 12인의 마을만들기 전문가가 3년여의 준비 끝에 선보인 마을만들기 안내서이자 참고서이다. 우리나라 마을만들기의 역사와 도시계획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 지역 여건에 맞는 마을만들기를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 등 다양한 시선의 원고들이 마을만들기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다양한 국내사례가 소개되어 있어, 우리 실정에 맞는 마을만들기를 어떻게 추진해나가야 할지에 대해 유용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마을만들기의 중요 주체인 ‘주민’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실마리와 새로운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거점’에 대한 발견과 활성화를 위한 제언이 실질적인 마을만들기 추진에 큰 도움을 주고, ‘마을만들기 반성문’ 등에서 엿볼 수 있는 현장 경험을 통해 얻어진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여러 제안들이 마을만들기의 올바른 방향성도 제시해준다.

무엇보다 일본의 마치즈쿠리와 다른 우리만의 마을만들기의 오늘을 살펴볼 수 있다.


책을 펴내며 _ 김기호
마을만들기는 운동이다 _ 김은희
한양주택은 왜 결국 사라졌을까 _ 허윤주
도시만들기 속의 마을만들기로 _ 박재길
마을만들기 속에서의 계획, 과정적 가치가 필요하다 _ 장옥연
주민참여와 주민 _ 김세용
커뮤니티 디자인, 주민갈등을 넘어 관계를 디자인하다 _ 이영범
거점의 발견 _ 안현찬
청주 마을만들기 중간자, 주민참여 도시만들기 지원센터 _ 황희연
장사가 잘되는 마을만들기 _ 김도년
Happy Korea, 행복한 마을?: 마을만들기 반성문 _ 박소현
성북구 장수마을의 마을학교와 동네목수 _ 이윤석
아파트도 마을이다 _ 김기호